
동리산문은 신라 헌덕왕(809-826) 이후 당나라에서 선법을 받은 유학승들이 귀국해 형성한 선종(禪宗)의 9개 파인 구산선문 중 태안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파를 말하며, 혜철은 814년 당에 유학해 선법을 전해 받고, 동리산 태안사에 머물면서 동리산문을 형성했고, 입적 후 신라 경문왕으로부터 시호는 적인(寂忍), 탑호(塔號)는 조륜청정(照輪淸淨)을 받았다. 한편, 부도란 고승(高僧)이 죽은 뒤에 유골을 안치해 세운 석조물을 말한다.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은 여러 개의 석재를 짜 맞추어 조립한 가구식 기단을 별도로 조성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탑의 전형으로, 탑 맨 아래에 위치한 하대석에는 각기 다른 형상의 사자상이 양각돼 있고, 석탑의 몸을 이루는 탑신석 양 옆면에는 목조건축의 기둥과 인방(기둥과 기둥을 연결한 가로부재) 등 목부재를 본떠 새겼으며, 문비(門扉)와 사천왕상(四天王像) 등은 평면적으로 섬세하게 조각해 하나의 조형물에서 역동적인 조각기법과 절제된 조각기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또한 전체적인 비례감과 조형미가 뛰어나며, 특히 목조건축의 지붕 형상을 본떠 조각한 옥개석은 전통 한옥의 처마곡선과 목부재를 사실적으로 재현해 당대 최고의 석공이 시공했을 것으로 추정돼 예술적, 기술적 가치가 크다.
팔각원당형은 부도탑의 기단, 탑신, 옥개석이 팔각형으로 이루어진 형식을 말하며, 문비란 부도탑, 석탑의 탑신석에 사리장치를 봉안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새긴 문짝 장식이고, 사천왕상은 우주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을 형상화한 불교조각이다.
이외에도, 비문에 시호와 탑의 건립 시기(861년)가 명확히 기록돼 있어 팔각원당형 부도탑의 편년 기준작이 되며, 기단 주변에 남아 있는 4개의 주초석은 신라시대에 건립된 승탑 중 유일하게 예불행위를 위한 탑전(塔殿)시설을 갖추었던 흔적으로 추정돼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한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지속적으로 협조해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