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리산문은 신라 헌덕왕(809-826) 이후 당나라에서 선법을 받은 유학승들이 귀국해 형성한 선종(禪宗)의 9개 파인 구산선문 중 태안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파를 말한다. 또 부도는 고승(高僧)이 죽은 뒤에 유골을 안치해 세운 석조물이다.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은 여러 개의 석재를 짜 맞추어 조립한 가구식 기단을 별도로 조성한 팔각원당형 부도탑의 전형이다. 탑 맨 아래에 위치한 하대석에는 각기 다른 형상의 사자상이 양각돼 있고, 석탑의 몸을 이루는 탑신석 양 옆면에는 목조건축의 기둥과 인방 등 목부재를 본떠 새겼다. 문비(門扉)와 사천왕상 등은 평면적으로 섬세하게 조각해 하나의 조형물에서 역동적인 조각기법과 절제된 조각기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전체적인 비례감과 조형미가 뛰어나며, 목조건축의 지붕 형상을 본떠 조각한 옥개석은 전통한옥의 처마곡선과 목부재를 사실적으로 재현해 예술적, 기술적 가치가 크다.
비문에 시호 적인과 탑의 건립 시기(861년)가 명확히 기록돼 있어 팔각원당형 부도탑의 편년 기준작이 되며, 기단 주변에 남아 있는 4개의 주초석은 통일신라의 승탑 중 유일하게 예불 행위를 위한 탑전시설을 갖췄던 흔적으로 추정돼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국보로 지정한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지속적으로 협조해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