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여귀산 남쪽 자락, 바다가 멀리 보이는 도로변에 작은 운동장을 앞에 두고 단층 건물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30여년 전에 폐교한 상만초등학교 건물이다. 이곳이 독보적인 현대 한국화의 세계를 펼쳐보이는 이상은 화백(73)의 작업실이자 전시장인 나절로미술관이다.

나절로미술관은 국립남도국악원과 불과 100여미터 거리에 위치한다. 남도국악원을 지나면 곧바로 갈랫길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 커브를 돌면 그 언저리에 작은 미술관 푯말과 철제 대문이 보인다. 미술관답게 작지만 독특한 모양이다. 그러나 너무 빨리 지나가면 자칫 놓치기 십상이다.



미술관 현관을 들어서면 바로 전시장이 펼쳐진다. 다채롭게 펼쳐진 그림들을 보는 순간 다소 생경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화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서양화의 추상화나 짙은 유화와도 같은 화폭이 펼쳐져 있다. 그런데 한국화란다.
이상은 화백은 의아해하는 관람객들에게 ‘현대 한국화 채색화’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화백은 한국화의 근원을 고구려 고분벽화나 한옥의 단청에서 찾고 있다. 오방색을 쓰는 채색기법이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화조나 산수가 없다. 소위 중국에서 건너온 수묵화를 그는 채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분벽화나 단청에서 영감을 얻어 오방색 위주로 화폭을 진하게 채운 뒤 갖가지 형상을 음각하듯이 새겨넣거나 덧씌워 새겨 넣는 방식으로 화폭을 채운다.
다소 이색적인 것은 이 화백은 UFO나 외계인을 믿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외계인이 종종 등장한다. 음각하듯이 외계인을 화폭에 새겨넣는다. 그림 곳곳에 새겨진 외계인의 갖가지 모습이 마치 고분벽화에 새겨진 문자나 동식물의 그것과 맥을 같이 하는 듯하다.
그의 화폭을 가득 채운 색조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히는 매력이 있다. 흡사 무질서해 보이면서도 색들의 조화나 배치가 절묘해 그 안에 담긴 형상은 그리 큰 의미가 없어 보일 정도다. 형상들은 가까이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오히려 크게 드러나지 않을 정도다. 색들이 표출하는 조화와 균형의 미가 중요한 듯하다.

그는 뎃생 없이 그냥 본능에 맡겨 화폭을 채운단다. 부러 서툴고 거칠게 그려 혼돈 속의 질서를 찾아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틀에 맞추기보다, 틀밖에서 자신의 느낌과 상상으로 화면을 채워나간다고 말한다. 그는 “그림은 기술이 아니고 감성에 기반한다.”고 강조한다.


운동장에 배롱나무를 가득 채운 뒤에는 그 주위에 돌조각들을 배치했다. 크고작은 돌에 오만상의 얼굴들을 표현해내고 일렬로 세워놓았다. 희노애락을 담은 돌조각들을 통해 ‘백팔번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에서다.

운동장 한 켠에는 커다란 돌에 새겨진 ‘산다네’라는 제목의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문학적 소질이 뛰어난 그가 고교시절에 썼다는 시다. 그는 이미 고 2때 시문학에 등단할 정도로 문학적 자질이 뛰어났다. 그 시로 당대에 걸출한 작가들에게 인정받으며 교류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청춘은 문학가로서의 길이 예정돼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그는 돌연 화가가 되겠다며 고향 폐교를 구입해 미술관으로 꾸몄다. 그리고 30여년을 이어오고 있다.

그를 지탱하는 것은 타고난 예술적 감각만이 아니다. 그림을 죽고살고 그리면서도, 고고학과 역사학, 지리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독서에 탐닉했다. 독창적인 세계관과 예술관을 닦아나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보적 예술세계를 허허롭게 펼쳐나가고 있다.
그는 타고난 예술적 감각에다 절대음감도 지녔단다. 최근 진도 출신 트로트 가수 송가인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트로트 몇 곡을 작곡했다고 자랑한다. 송가인의 목소리로 자신의 노래가 세상에 알려질 기회를 찾고 있다며 기대감을 키운다.
나절로 미술관은 여행객들이 여독도 풀고, 우리의 전통 예술의 감흥에 취해볼 수 있는 마땅한 장소가 아닐까. 화백이 풀어내는 현대 한국화의 독보적 화폭과 인간 군상, 그리고 독창적인 시 속에 그려진 그의 세계관을 두루두루 감상하며 긴 여운을 남겨보자. 화백과 차 한 잔 하며,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덤이다.